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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해살이마을 유래]

 

 ‘여가 대굴령 너매 강릉 해살이 마을 이래요…. 얼픈 오시우야.’ 백두대간의 산봉우리가 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맑은 계곡이 흐르는 강원 강릉시 사천면 사기막리 ‘해살이 마을’. 148가구 38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대관령 인근에 설치돼 있는 22개 풍력발전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 마을 입구엔 40쌍의 솟대·장승이 세워져 있다.

마을 역사도 깊어 주변에서 200년 전 도공들이 막사발 사기그릇을 만들던 가마터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역사 때문에 해살이마을은 ‘사그막’ 또는 ‘사기막’이라고 불렸다.

자연도 아름답고, 역사도 깊은데다 이국적인 풍력발전기까지 보이는 까닭에 마을엔 4계절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처음부터 관광지가 된 것은 아니었다. 마을이 외부에 본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5~6년 전에 불과하다.

주로 벼와 오이, 옥수수, 감자, 채소 등을 재배하던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해살이 마을 주민들은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해 밭에 약용수목인 엄나무를 심었다.

마을내 8만2천5백㎡에 10만주의 엄나무를 보유하고 연간 3,000㎏가량의 개두릅(엄나무순)을 생산하게 되자 이 마을은 ‘개두릅 마을’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마을 자체적으로 개최하기 시작한 개두릅 축제에 수천명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개두릅(㎏당 1만5천원)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개두릅밥, 개두릅전, 엄나무 수육, 엄나무 동동주, 엄나무 백숙 등의 향토음식 수요도 폭증했다.

특산품을 활용한 소득증대 효과를 직접 체험한 주민들은 친환경 오리농 및 기능성 특수미를 재배하며 보다 많은 변화를 꾀했다.

게다가 지난해엔 해살이 마을이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됐다.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돼 수억원의 예산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강릉사천한과마을 유래]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노동중리. 동해안을 따라 달리는 7번 국도 옆의 마을로, 예전에는 갈대가 많아 갈골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지금은 ‘사천 과줄마을’ 혹은 ‘한과마을’로 더 알려졌다. 주민 대부분이 전통 한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곳은 해방 후 솜씨 좋은 한 아주머니 덕에 지금 전국에서 손꼽히는 한과마을로 자리 잡았다. 500년간 뿌리 내리고 살아온 강릉 최씨 집안으로 시집 온 이원섭(작고)씨가 친정에서 물려받은 재주를 살려 한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어려운 살림에 보태기 위해 주문진시장에 내다 팔면서 소문을 탔다. 그 기술이 전파돼 너도나도 나서면서 노동중리는 명성을 굳히게 됐다.

마을 길옆에는 1992년 주민들이 세운 ‘한과마을’ 표석이 있다. 여기에 한과마을의 터를 닦은 이씨를 기리는 글이 새겨졌다. “옛 우리 마을은 농토의 황폐로 굶주리던 가난한 마을이었다. 1920년 당시 19세의 나이로 우리 마을로 출가한 이원섭 여사가 쌀을 소재로 한 가공식품 과줄을 개발, 마을 부녀자들에게 보급해 전통을 이어 내려오면서 잘사는 마을로 바뀌었다”고 썼다.

갈골마을은 1989년 전통식품 보존마을로 지정됐다. 이후 한과를 만드는 집은 더 늘어났다. 지금은 가구당 연 소득이 5000만원을 넘을 정도로 부자마을이 됐다. 원조(元祖) 이씨는 10여 년 전 타계했고, 이후 며느리를 거쳐 손자 최봉석(60)씨가 대를 잇고 있다. 최씨는 2000년 전국 첫 ‘한과 분야 전통식품 명인’으로 지정 받기도 했다.

최씨는 “우리 마을 한과는 기계를 거의 쓰지 않고 손으로 만드는 게 특징”이라고 했다. 덕분에 겉으론 투박해 보이지만, 속이 촘촘해 깊고 부드러운 옛 맛이 살아 있다는 것. 재료도 튀김용 기름을 빼고는 직접 만들어 쓴다. 찹쌀을 불리는 일부터 포장까지 모든 공정이 손으로 이루어진다.

‘과줄’이라 부르는 네모난 한과에만 손길이 열 번 넘게 들어간다. 찹쌀 담그기, 콩물 만들기, 방아 찧기, 체로 치기, 가루 반죽하기, 찜들이기, 바탕 썰기, 튀기기, 조청 바르기, 튀밥 입히기의 과정을 거친다. 찹쌀을 발효시킨 뒤 찌고 말려 반죽을 튀기기까지 최소 열흘은 걸린다. 이에 따라 대량 생산은 쉽지 않다고 한다.